세상을 모를때가 너무 많다.


livelab

지금껏 내가 쓰고 있는 이 닉네임은 한창 '자율성'을 공부할때,
산-노동 = living labor에 아이디어를 얻어 만든 것이다.

물론, 살아있는 실험실 living laboratory 의 중의적인 의미도 염두해둔것이긴 하다.

그런데, 요즘 찬찬히 바라보면, 맑스가 말하는 잉여가치를 쏟아내는 노동력은 분명 존재하지만,
노동자는 존재하지 않는다. 일이 즐거움이요, 자유로움인 그 순간! 그것은 요원할지언정,
노동은 어쩔수 없이 삼키는 처참한 마약같은 형태가 되어버렸다.

http://h21.hani.co.kr/arti/cover/cover_general/26266.html

한 친구가 엊그제 '이 기사 읽어봤어?'라며 문자가 왔었다.

이 기사를 보며 다시 든 생각은....

'우리'라는 가치와 '공존'의 가치는 별개가 아닌데, '우리'는 그룹핑의 소속어가 되어 가고 있다.

요즘 나 역시 만나는 사람, 만나는 환경 등등은 '이 세상'을 잊게 만들거나 또는 모르게 만든다.

정말,
'세상을 모를 때가 너무 많다'



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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